일본 기괴사건 사카키바라 스왑주의

1997년 효고현 고베시 스마구에서 발생한 14세 중학생에 의한 연쇄 살상사건이다.

이 사건은 사카키바라 사건 (酒鬼薔薇 事件)으로도 불린다.

수개월에 걸쳐 다수의 초등학생이 피해를 입어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묻지마 살인, 시체 손괴가 일어났다는 점 특히 피해자의 머리가 성명문과 함께 중학교 정문에 놓인 점, 지역신문사에 도전장이 보내진 점등 강한 폭력성이 수반된 특이한 사건에 범인이 평범한 중학생인 것까지해서 지역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이다.

사건이 발각된 것은 1997년 5월 27일 이른 아침 고베시 스마구의 도모가오카 중학교 정문에 목이 잘린 남자아이의 머리를 행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피해자는 5월 24일 근처 아파트에서 실종됐던 11세 남자아이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목이 잘리고 귀까지 찢긴 피해자의 입에는 사카키바라 세이토 라는 이름으로 된 범행 성명문이 끼어있어 그 잔악함과 특이함 때문에 언론을 통해 전국으로 보도되었고 6월 4일에는 범인으로부터 두번째 범행 성명문이 고베 신문사로 전해진다.

6월 28일에 범인이 체포되었고 당시 언론에서는 범인을 건장한 체격의 3~40대 남성이라 봤으나 정작 범인은 14세 중학생이었다.

이 사건은 1997년 2월 10일 오후 4시의 고베시 스마구의 어느 길거리에서 첫번째 피해자가 발생한다.

여자 초등학생 2명이 고무로 된 망치로 맞아 1명이 중상을 입었다.

범인이 블레이저를 착용하고 학생 가방을 소지하고 있다고 들은 피해자의 아버지는 근처 중학교에 가서 범인을 알아내기 위해 학생의 사진을 보여달라 요청하지만 학교 측은 경찰을 통해 알아보라며 경찰로 떠넘겼고 효고현 경찰에 가서 피해신고를 하고 학생사진을 열람할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이 첫번째 피해가 발생했을 때 학교측에서 무언가 조치를 했다면 다음에 벌어질 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범인을 감싸준 것이 아니냐 라는 비판도 있었다.

두번째 범행은 3월 16일 밤 0시 25분 고베시 스마구 류가다이 공원에서 발생한다.

근처에 있던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에게 손을 씻을 수 없냐고 물어본 범인은 학교를 안내하게 한 다음 답례를 하고 싶으니 뒤를 돌아봐달라고 하면서 아이를 망치로 때리고 도망갔다.

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3월 23일에 뇌좌상으로 사망했다.

오후 0시 35분에 범인은 초등학생 3학년 여자아이의 배를 13cm 길이의 작은 칼로 찔렀다.

칼은 위를 관통하고 등의 정맥에 닿기 일보직전에 멈췄는데 이것 때문에 겨우 살았지 만에 하나라도 닿았다면 살아날 수 없었을 것이란 말이 있었다.

또한 수술을 할 때 수혈한 피의 양은 1.8L나 됐다.

5월 24일 범인은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에 적당한 타겟을 찾으려고 오후 늦게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동네를 10분간 돌아다니다가 다이노하타 초등학교 북쪽 도로 인도에서 자신과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던 남자아이를 우연히 발견한다.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11살로 할아버지 댁에 가겠다며 오후 1시 40분경에 집을 나선 상황이었다.

범인은 이 아이를 언제 알게되었는지에 대해선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범인이 5학년 때 초등학교에 장애인을 위한 사이좋은 학급이 있었고 그 안에 이 아이가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됐는데 그 후에 이 아이가 자신의 집에 놀러오게 됐다.

직접적으로 친해진 것은 아니고 범인의 막내동생이 그 아이와 같은 학년이었기 때문이었으며 그 때 자신의 집에서 기르던 거북이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걸보고 아이가 거북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순간적으로 범인이 생각한 것은 “이 녀석이라면 나보다 작으니까 죽여버릴 수 있어” 였다.

그러면서 남자아이에게 다가가 맞은편 산에 거북이가 있으니 함께 보러가자며 탱크산이라 불리는 고지대로 유인하여 산꼭대기 바로 앞에 있는 케이블TV 안테나 시설 입구 부근까지 데려가 그 자리에서 교살하고 시신을 숨긴다.

처음엔 목을 졸라 죽인 것인데 이것은 범인이 손으로 직접 사람의 목을 졸라 죽여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범행을 저지를 때 지문이 묻을까봐 장갑을 껴서 죽이려고 했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아 칼로 베려고했지만 준비했던 칼이 없어졌고 근처에 있던 돌로 죽이려 했지만 돌이 잘 빠지지 않아 운동화 끈을 이용해 죽여버렸다.

심음을 확인해 완전히 죽었다고 판단하였다고 했는데 진술에서 범인은 쉽게 죽지 않은 것에 짜증이났지만 사람을 죽이다는 긴장감과 분노를 포함해서 그 행위 자체를 즐겼으며 최종적으로 죽이는 것에 성공했을 때 자신이 사람을 죽일 수가 있었고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만족감으로 가득찼다고 말했다고 한다.

거기에 3월 16일에 두 여자아이를 때리거나, 칼로 찌르거나 했으며 훗날 자신이 망치로 때린 여자아이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한순간의 행위라는 것 때문에 큰 만족감이 들진 않았는데 이 남자아이의 경우는 죽이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던만큼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지만 시체를 어디에 숨겨야하나라는 고민에 빠지자 그 만족감이 사라졌다고도 말했다.

(탱크산의 사진)

살해를 한 뒤에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지, 시신의 발견을 최대한 늦출 수 있는 것을 계속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안테나 시설 안의 건물 바닥 밑에 풀이 자라있어 펜스 너머에선 바닥 아래가 잘 보이지 않을 것이라 보고 이 곳에 숨기려했으나 자물쇠가 걸려있어 시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이를 그대로 둔 범인은 코플리빙센터 북스마점으로 가서 톱과 자물쇠를 훔쳤는데 훔친 이유는 돈이 없어서, 직원이 자신의 얼굴을 익힐 수 있어서였다.

범인은 다시 아이의 시신이 있던 장소로 돌아와 입구에 있던 자물쇠를 자르고 아이를 들어 시설 안으로 들어가 시신을 바닥쪽으로 밀어넣고 훔친 자물쇠로 시설을 잠궜다.

이후 범인은 친구들과 놀다가 오후 6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데 여기서 어머니가 “그 아이(피해자)가 없어졌다나봐”라고 이야기하자 “흐응”하고 대꾸하며 넘어갔다.

그리고 밤이 됐을 때 한밤중에 하루를 되새기던 범인은 자물쇠를 절단할 때 쓴 톱으로 아이의 머리를 몸통에서 떼어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이제까지 수십마리의 고양이를 죽이고 그 목을 베어버렸는데 고양이도 칼 한자루로 쉽게 베였는데 사람도 한번 잘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날이 되었을 때 탱크산에 숨긴 톱으로 아이의 목을 베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에 빠져든다.

5월 25일 범인은 평소처럼 일어나 아이의 목을 베기 위해 집을 나섰다.

목을 자르면 피가 많이 나고 현장에 피가 있으면 발에 묻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검은 비닐봉투 2장, 톱을 운반하기 위해 학교에서 쓰던 가방, 구멍팔 때 쓰는 칼을 가져갔다.

시신 쪽으로 간 범인은 그냥 목을 베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어서 특별한 감정이 느껴지는 건 없다고 말했다.

조사관이 범인에게 아이의 얼굴과 눈을 보면서 목을 베어버리는데에 거부감이 없었냐고 물었을 때 범인은

“별다른건 없었어요

제가 죽인 시체니까요

제 작품이었으니까요”

라고 답했다.

아이의 이마를 누른채 톱으로 목을 베었고 이 때 느낀 감정은 현실에서 사람의 목을 베는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머리채를 잡아 목에서 뜯어낸 뒤 머리와 몸통을 떼어냈다는 생각에 범인은 머리를 땅에 내려놓고 정면에서 감상하며 이 불가사의한 영상은 내가 만든 것이다. 하는 만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다가 범인은 시체에 아직 영혼이 남아있다고 생각해 영혼을 빼내겠다며 잠든 듯한 아이의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가져온 구멍팔 때 쓰는 작은 칼로 아이의 두 눈을 찌르고 양쪽 눈꺼풀을 잘라버린 뒤 입을 귀까지 찢어버린다.

그러고는 살인했을 때의 흥분을 나중에 되새기기 위한 기념품을 가져가자려했으나 사후경직 때문에 하지는 못했다.

그 후 비닐봉투에 고여있던 아이의 피를 마셨는데 금속을 핥는 맛이 느껴졌다고 하며 왜 아이의 피를 마신거냐고 묻자

“자신의 피는 더럽혀져있기 때문에 순수한 아이의 피를 마시면 그 더러운 피가 맑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어린 아이의 목숨을 앗아가 기분 좋다고 느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감의 표현입니다.”

라고 진술하였다.

범인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한번 더 차분히 감상하고자 비닐봉투에 아이의 목을 넣고 탱크산을 내려와 기타스마 고등학교로 향했다.

원래 있던 길로 돌아가려했으나 발자국 소리와 이야깃소리가 들려 실종된 남자아이를 찾을 목적으로 자경단이나 경찰이 들린 것이라 보고 다른 길로 내려간 것이었다.

공원 안쪽의 숲까지 들어간 범인은 톱이 들어있던 가방을 꺼내 그 가방 안에 남자 아이의 목이 담긴 비닐봉지를 넣었다.

숲 속에서 전경 3명을 만나고 그로부터 어디서 왔냐라는 질문을 받고 공원 입구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3명중 누군가가 위험하니까 돌아가야지 라고 말하고 그냥 돌아갔다.

그 후 아이의 목을 숨길 장소가 없을까 둘러보다가 연못 쪽에 나무가 자라는 곳이 있었고 그 나무 근처에 목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있어 거기서 아이의 목을 꺼내 아이의 목을 감상하였다.

새로운 장소에서 아이의 목을 감상하면 새로운 감동을 얻으리라 기대하고 이런 행동을 한 것이지만 별다른 감동은 없었고 2~3분가량 보다가 다시 비닐봉투에 넣어 나무 밑둥에 있는 구멍 속에 숨기고 목을 절단할 때 썼던 톱은 공원 옆에 있던 무카이하타노이케 (向畑ノ池)에 던져버렸다.

그 날 밤에 범인은 생각에 잠긴다.

사람의 시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 매우 흥미가 생긴 것이었고 내일도 아이의 목을 보러가려했다.

조사관은 몸통이 있는 탱크산에 다시 갈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는데 범인은

“그런건 생각하지도 않았고 아이의 몸통 부분은 옷을 입고있으니까 시체의 변화를 보려면 옷을 벗겨야하는데 그거는 귀찮아요 게다가 탱크산은 사람들이 올라올 수 있잖아요”

이렇게 대답했다.

5월 26일 아이가 행방불명된 사건으로 오전 11시 40분 효고현 스마 경찰서는 공개 수사를 개시하여 효고현 경찰, PTA, 소방서등 총 150명의 인원이 수색에 나섰다.

범인은 이 날도 평소처럼 지내고 오후에 목을 차분히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전거를 타고 그 장소로 가서 숨겨둔 목을 꺼내들고 가까운 거리에서 5~6분간 목을 쳐다봤는데 이거는 감상이 아니라 관찰이었다고 진술했다.

관찰 결과 색이 전날에 비해 창백해진 거 빼고는 별다른 변화가 없어 실망했고 흥미를 잃어 그 목을 집으로 가져갔다.

어디에 숨기든 간에 조만간 경찰이 몸통도, 목도 다 발견할 것이라 생각한 범인은 아이의 목을 굳이 드러냄으로써 경찰 수사망에서 자신을 떨어뜨려놓겠단 생각에 이른다.

아이의 머리를 어디에 방치해놓을까 고민한 끝에 자신이 다니는 고베 시립도모가오카 중학교가 가장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설마 중학생이 사람의 목을 베어 방치하진 않겠지라 생각할 것이고 이렇게되면 자신은 수사망에서 벗어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또 한가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남에게 죄를 넘기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란 것과 자신이 아이를 죽인 것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생겨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어서 였지만 남에게 죄를 넘길 수는 없는 것이고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학교가 아이를 죽인 것이지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학교에 책임을 전가하고 싶었던 것이다.

학교에 대한 원한 때문이라던가, 학교의 교육에 의해 이러한 자신이 생겨났다라는 생각까지 나아간 것은 아니라고 진술했다.

머리를 둘 장소는 가장 눈에 띄는 정문으로 결정하고 비닐봉투에 아이의 목을 담아 자전거 앞 바구니에 대놓고 싣고서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목을 씻자고 생각해 흙이나 나뭇잎으로 더러워진 머리를 호스를 사용해 15분간 정성들여 씻기고 자신의 방 천장 위에 숨긴다.

목을 씻긴 이유는 두가지

하나는 머리에 묻은 흙이나 나뭇잎 등으로 장소가 특정되게 하지 안힉 위해

또 하나는 경찰의 눈을 속이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건데 피로 더러워져 있는게 좀 그러니까 경찰의 눈으로부터 내가 멀어질 수 있도록 해줘, 너의 첫 무대니까 얼굴을 깨끗하게 해줄게 같은 생각으로 이런 것이며 이런 생각을하고 목을 씻기면서 너무 흥분한 나머지 발기해서 머리카락에 빗질을 하며 사정을 했다.

범인은 아이의 목을 학교 교문에 두는 것만으로는 경찰에게서 시선을 돌리기엔 부족하다, 수사를 좀 더 혼란에 빠뜨릴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목에 뭐라도 둬야한다면 아이의 입이 벌어져 있으니 아이의 입에 편지 같은 것이라도 물려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가짜 범인의 상을 표현하는데는 편지가 제격이며 그날 밤에 편지에 들어갈 문장을 생각한다.

지금까지 읽은 책에서 기억나는 말, 스스로 떠올린 문장 같은 걸 넣으려다 뭔가 더 인상적인 표현이 필요하다 생각해서 방에 있던 만화책에서 마라문의 가족 제3권의 목차 적년(積年)의 대원에 작열의 심판을 보고 적년(積年)의 대원이라고 쓰면 오랜 세월동안 쌓인 원한을 가진 사람의 범행이라고 생각하고 어느정도 나이가 든 사람이 저지른 범인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하고 이걸

인용한다.

그리고 다른 책에서 봤던 단어들을 조합해서 편지를 쓴다.

작열의 심판을 이라는 대목은 아이의 목을 태워버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장을 “유혈의 심판을” 이렇게 바꾼다.

자, 게임이 시작됐습니다

우둔한 경찰 제군이여, 나를 한번 저지해 보시게

나는 살인이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어

사람이 죽는 걸 보고 싶어 죽겠어

더러운 채소 같은 인간들에게 죽음의 제재를

적년의 대원에 유혈의 심판을

SHOOLL

학교살인의 사카키바라

조사 과정에서 범인은 편지에 적힌 글에 대해 잘 기억하고 있었고 조사관에게 빨간 펜과 검은 펜으로 썼으니 펜 2개를 빌려주면 그대로 재현하겠다고 말해 조사관은 백지와 빨간 펜, 검은 펜을 건네준다.

조사를 받을 때는 적년의 대원(積年の大怨)이 아닌 적년의 대공 (積年の大恐)이라 썼는데 이것에 대해선 자신이 만화책을 보면서 쓴거라 글씨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둔(愚鈍)하다는 표현은 다른 책에서 외워서 썼고 더러운 채소라는 표현은 범인 자신이 생각나는대로 쓴 말이다.

이것은 범인이 부모에게서 운동회에서 긴장이 될 때면 다른 사람들을 채소라고 생각해라 그러면 사람들이 채소로 보일 것이다라는 말이 생각나서 그렇게 썼다고 답했다.

이거 말고 다른 문장들은 자신의 머리로 생각한 것이고 TV에서 인용했다던가 어떤 소설로부터 인용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편지에는 문장과 함께 마크가 적혀있는데 범인은 이것을 자신이 그린 마크라고 말하며 나치 독일의 문양을 쓴 것이며 이 문양은 TV에서 본 적이 있고 어렸을 때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읽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영어로 SHOOLL KILL이라 적은 것은 SCHOOL KILLER를 잘못 적은 것으로 저게 맞는 표현인줄 알았다고 하였다.

마지막에 적힌 사카키바라 세이토는 초등학교 5~6학년 무렵에 나쁜 자신에게 자기 자신이 붙힌 이름이라고 말한다.

사카키바라 세이토의 마크도 있지만 디자인이 약간 다르며 편지에 쓴 마크는 나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였고 조사관이 왜 이때 당신의 마크를 썼느냐라고 물었을 때 범인은 모르겠다고만 대답했다.

5월 27일 오전 1시경부터 오전 3시 사이에 머리가 든 가방을 자전거에 넣어 중학교 교문 앞에 유기한다.

이 준비를 위해 범인은 아이의 목이 담긴 비닐봉지를 가방에 넣고 편지는 청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방을 나설 떄 부모님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창문으로 나갔으며 도모가오카 중학교로 갈때 차도가 아닌 보도를 지나갔고 가는동안에 누구하고도 마주치지 않았다.

정문까지 왔을 때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쥐고 목을 꺼내 정문 오른쪽 담벼락 위에 목을 올려놓았지만 아이의 목이 떨어져버렸고 어디다 둘까 고민하다가 정문 앞이라면 제일 눈에 띄는 곳이고 땅바닥이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문 중앙에 도로측으로 얼굴을 향하게 두었다.

편지를 꺼내 사카키바라 세이토라는 글자가 보이도록 세로로 사카키바라의 문자쪽을 입에 물게했고 그 때의 광경을 학교 정문 앞에 목이 있다니 좀 이상한 영상이네 이렇게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범인은 그 광경을 5~6분간 보면서 이 때 성적 흥분이 최고조에 달해 성기에 아무런 자극도 주지 않았는데 몇번이고 발기가 되었다며 그 때의 광경을 범인은 작품이라고 불렀다.

오전 5시경 중학교 정문에 온 사람이 있었지만 그 때 남자아이의 목이 없다고 진술한 것에 대해 범인은

“그것은 착각일 겁니다.

왜냐하면 저희 부모님은 새벽 5시부터 부엌에 계시기 때문에 저는 그 시간대에 그 아이의 목을 들고 집을 나서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적어도 오전 3시부터는 부모 모르게 행동할 수가 없으며 제가 아이의 목을 정문 앞에 둔 것은 늦었어도 오후 3시는 됐을 겁니다”

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기자회견에서 사카키바라세이토를 사카 키바라 세이토로 나눠서 읽었으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수없다고 발표했고 언론에서도 경찰의 기자회견과 똑같이 이야기한다.

TV아사히 특별보도 프로그램에서 저널리스트 구로다 키요시는 사카키바라 세이토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냐라고 발언하는데 이 발언 때문에 사카키바라 학생 (세이토)라는 해석이 퍼져나갔다.

당시 범인이 미성년자여서 본명이 공개되지 않아 사건이 해결 됐을 때도 범인을 사카키바라, 사카키바라 세이토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범인은 당일 TV에서 아이의 목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 자체는 자기가 그렇게 되도록 유도한거니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지만 탱크산 바닥에 감춘 아이의 몸통까지 발견한 것은 예상 밖이었기에 너무 빠른 거 아니냐며 깜짝놀랐다고 한다.

범인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TV 프로그램, 신문은 다 보고있었기에 이번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를 살펴봤는데 언론보도에서 3~40대 남성, 검은색 블레이저가 목격됨, 범인은 피해자의 집 근처의 인물이라는 내용으로 되어있어 이렇게까지 잘 됐으면 내가 범인인걸 모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고베신문사 앞으로 보내는 편지를 작성한다.

6월 4일 고베 신문사 앞으로 붉은 글씨로 써진 제 2의 성명문이 도착한다.

편지를 쓴 것은 6월 2일의 밤이었다고 범인은 진술했으며 지금까지의 보도에서 사카키바라를 오니바라로 잘못 읽은 것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또 틀리면 보복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또한 자신을 투명한 자신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자 살인을 저질렀다고 썼다.

고베 신문사는 사건에 관련된 인물 밖에 알 수 없는 사람의 죽음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적힌 이 성명서는 장난이 아니라 범인이 적은 것으로 확정한다.

그리고 범인은 성명문을 쓰는데 있어 다음과 같은 범인상을 이미지하여 작성했다.

“고등학교 시절 야구부에 소속된 적이 있는 30대 남성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로부터는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고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지 않았으나 고립되어있었다.

학교에서 일하다가 해고되어 지금은 병든 어머니와 둘이서 살고있다.

학창시절 이지메를 당했기에 자신을 투명한 존재라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자신을 만들어 낸 의무교육을 원망하고 있다.

피해망상과 자기 현시욕이 남달리 강해 사회를 미워하고 은근히 복수를 생각함”

이 문장은 히토츠바시 후미야의 미해결-봉인된 5건의 수사보고라는 책의 311페이지에 적혀있다.

범인은 “확실히 말하자면 말을 잘한다.

편지를 새롭게 쓰면 내 필적을 경찰이 알아차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 자신은 경찰의 필적 감정을 얕잡아봤었으며 이러다 잡히겠네 좆됐네 같은 생각을 했다”

라고 진술했다.

수사 관계자는 워낙 수많은 저작물들이 있어 원본을 쉽게 찾을 수 없었는데 아즈마 신이치로 (범인)가 떠올라 작문을 조사했더니 곧바로 동일인물의 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특히 징역 13년이라는 작문이 많은 참고가 되었다,”

라고 이야기하였다.

검찰은 범인이 쓴 글과 두가지 범행 성명문의 필적 감정을 거쳐 감정결과는 유사한 필적이 비교적 많이 포함되어있었지만 동일 인물의 필적 여부를 판단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못했었다고 밝혔다.

범인은 진술에서 “사실 내가 남자아이를 죽이거나 남자아이를 정문 앞에 두고 있었지만 마치 나 말고도 범인이 있는 것처럼 범인상을 상상하여 그 범인이 되어 편지를 쓰기로 했고 내가 쓴 편지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내가 상상한 범인이 가진 동기를 쓴 것이며 말하자면 작문이다.”

라고 말했으며 초안을 작성한 뒤 써나아간 것이라고 말했지만 초안으로 쓴 노트는 불태워없애버렸다.

전에 내가 밖에서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았는데, 아나운서가 내 이름을 잘못 읽어서 ‘鬼薔薇(오니바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사람의 이름을 잘못 읽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우롱하는 행위이다. 표지에 적혀 있는 문자는 암호도 수수께끼도 아테지도 아니다. 거짓 없는 내 본명이다. 내가 존재한 순간부터 그 이름이 붙어 있었고, 하고 싶었던 일도 제대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는 국적이 없다.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남한테 불린 적도 없다. 만약 내가 태어났던 때부터 지금까지 나로서 온전히 있었다면, 일부러 절단한 머리를 중학교 정문에 방치하는 행동 따위는 취하지 않았겠지. 하려고만 마음먹었다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몰래 살인을 즐길 수도 있었을 테지. 내가 일부러 세상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투명한 존재로 남아있을 나를, 적어도 당신들의 공상 속에서라도 실재하는 인간으로서 인식하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과 동시에 투명한 존재인 나를 만들어 낸 의무교육과, 의무교육을 탄생시킨 사회에 대한 복수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복수하는 것뿐이라면, 단지 지금까지 등에 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뿐이기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단 한 명, 나와 같은 투명한 존재인 벗에게 상담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참하지 않게 가치 있는 복수를 하고 싶은 것이라면, 너의 취미이기도 하고 존재 이유이기도 한 살인을 교배시켜 게임으로 즐기고, 너의 취미를 살인에서 복수로 바꾸면 되는 거야. 그렇게 하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너만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 말에 마음이 움직여서 나는 이번 살인 게임을 개시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도 나는 왜 내가 살인을 좋아하는가를 알지 못한다. 가지고 태어난 자연의 천성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살인을 하고 싶을 때만큼은 일상의 증오에서 해방되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있다. 다른 이의 고통만이 나의 고통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 종이에 쓴 글을 통해 대강은 이해해 주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남다른 집착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 이름을 잘못 읽는다거나, 내 존재가 더럽혀지는 일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 경찰의 움직임을 보면, 어쩐지 속으로는 귀찮아하는 느낌이 있는데 그걸 숨기고 얼버무리려고 한다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내 존재를 무마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이 게임에 목숨을 걸고 있다.

잡힌다면 아마 목매달려 죽겠지.

그러니 경찰도 목숨을 걸라고까지는 안 하겠지만, 더 분노와 집념을 가지고 나를 추적해 주게. 향후 한 번이라도 내 이름을 잘못 읽는다거나 또 빛바래게 만들 려고 하는 일이 있다면, 한 주 사이에 야채 세 개를 부숴버리겠습니다.

내가 아이들 밖에 죽일 수 없는 유치한 범죄자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나에게는 한 인간을 두 번 죽이는 능력이 갖추어져 있다.

이것이 고베 신문사 앞으로 보낸 성명문의 내용

6월 28일 현장 근처에 사는 범인에게 아침부터 임의 동행을 요구해 사정을 듣다가 자백을 받아낸다.

당초 범행을 부인했으나 조사관이 첫번째 범행 성명문의 컬러 사본을 꺼내며 이게 네가 쓴 것이 확실해 필적이 일치하다고 이렇게 말하자 소리내며 울더니 자백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필적이 일치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오후 7시 5분 경찰은 살인 및 시체유기 혐의로 범인을 체포하였고 동시에 괴한 사건에 대해서도 범행을 인정했다.

이후의 정보는 다음과 같다

6월 29일 – 효고현 경찰 수사 본부는 범인을 남아 살해, 시체 유기 용의로 코베 지검에 송검하여 10일간의 구치가 인정되었다.

6월 30일 – 머리를 집에 가지고 돌아갔다는 진술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7월 1일 – 머리를 절단하는 것은 무언가의 의식이었다는 진술이 보도되었다.

7월 2일 – 피해자의 얼굴 사진이 게제된 사진이 주간지 FOCUS에 발매되었고 범행 경위에 대해 거북이를 보여주겠다고 권유했다는 진술을 하였다고 보도됐다.

7월 6일 – 효고현 경찰이 무카이하타노이케 수색을 개시

7월 8일 – 구치 기한이 지난 아침에 지검은 구치 연장을 청구하여 지방법원에서 10일간의 구치 연장을 인정했고 연못에서 망치가 발견되었다.

7월 9일 – 다른 망치 2개, 칼등이 무카이하타노이케에서 발견되어 2~3월의 사건에 사용된 흉기로서 특정된다.

7월 11일 – 범인을 버스에 태우고 탱크산과 그 주변을 돌아다님

7월 15일 – 2~3월에 있던 괴한 사건으로 범인을 재체포

7월 16일 – 오전에 수사본부는 행마사건으로 범인을 송치, 10일간의 구치 청구가 지검에서 인정되었다.

7월 19일 – 범인의 집에서 입수한 범행 메모 내용이 보도

7월 21일 – 경찰 2명이 범인의 두 남동생에게 범인이 재체포된 괴한 사건에 대해서라던가 범인이 학교에서의 행동이 어땠는지, 언동은 어땠는지등을 물었고 특히 그의 외할머니의 전후의 모습이 어땠는지를 집요하게 물었다.

7월 24일 – 경찰이 범인의 부모에게 피해자측에 전화를 하여 사죄하라고 재촉한다.

이때 경찰은 “잘못 체포한 것일 수가 없어 만약 잘못 체포한거라면 효고현 경찰은 향후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하였다.

절단된 남자아이의 목을 교문의 담장 위에 놓지 못한 것에 대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해 억울하다고 진술한 보도가 나왔다.

7월 25일 – 고베 지검이 남아 살해, 행방불명 사건으로 고베가정재판소로 일괄송치, 오후에 범인은 고베 가정법원에서 고베 소년 감별소로 이송되었고 오후에는 스마 경찰서 수사 본부가 해산되었다.

8월 1일 – 고베 가정재판소에 의해 A의 심판 개시가 결정된다.

8월 4일 – 1회 심판. 종료후 정신 감정을 결정

8월 20일 – 범인의 부모가 묻지마 사건 피해자의 집에 보낸 사과의 편지가 언론에 보도된다.

9월 26일 – 작문 징역 13년에 대해 보도

9월 28일 – 남자 아이의 목을 절단하고 범인이 환청을 들었다는 내용이 보도

9월 30일 – 정신감정이 어땠는지 판명됐다는 보도

일본에서는 어른의 형사 재판과 달리 미성년 심판은 그 내용이 공개되지 않거나 언론에 보도디지 않는 사례가 대부분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은 심판은 결과가 보도되는 정도지만 이 사건은 사람들의 주목도가 너무나도 높아 가정 법원에서는 예외적으로 정신 감정 결과를 공개했다.

-뇌 X선 검사, 뇌파 검사, CT, MRI 뇌 단층 검사, 염색체 검사, 호르몬 검사 이상없음

-비행시 감정시 모두 정신질환이 없고 의식이 청명하며 나이에 걸맞은 지적능력이 있음

-비행시 감정시 모두 2인증상과 해리경성이 있으나 범행시나 감정시나 해리성 동일성 장애가 아니고 해리된 인경에 의한 범행이 아님

-미분화된 성충동과 공격성의 결합으로 지속적이고 공고한 사디즘이 이 사건의 중요한 원인

-직관상 소질(순간적으로 본 영상을 언제까지나 명료하게 기억할 수 있다.)이며 그 소질이 이 사건의 원인중 하나

-자기 가치를 긍정하는 감정이 낮고,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하며, 그 합리화, 지성화로서의 허무관이나 독선적인 사고방식은 이 사건의 원인중 하나

-이 사건은 장기적으로 지속된 다양하고 점증적으로 중증화된 비행의 최종적 도달점

범인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동물을 살해했고 처음에는 민달팽이나 개구리로 시작했다가 그 대상이 고양이로 바뀌었다.

범인 자신은 친구에게 고양이를 20마리나 죽였다고 말하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성적 발육이 시작되기 이전의 단계에서 성욕이나 성적 관심과 폭력적 충동이 분리되지만 범인은 분리되지 않아 동물에 대한 폭력에 의한 살해와 시신의 손괴가 성적 흥분과 결합되어있었다.

범인은 그 성적인 흥분과 쾌락의 감각을 사람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함으로써 고양이의 시체를 훼손하는 것보다 더 큰 성적인 흥분가 쾌락을 얻고싶다는 욕구로 치솟아 그것이 자신의 운명인 것을 알게되어 이 사건을 실행했던 것이고 살인의 동기는 쾌락 살이이었다.

또한 범인의 행동이나 언동을 염려한 범인의 부모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인 1995년 11월에 정신병원에 통원시켜 진단을 받게하거나 뇌 검사를 받게하고 그 결과 주의력 결핍 다동성 장애 (ADHD) 진단을 받았다.

범인은 감정의가 피해자를 살해한 것에 대해 물었을 때 자신을 제외한 인간은 야채와 같기 때문에 자르든 파쇄하든 상관없고 피해자 유족의 슬픔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을 때 그 때 거기를 지나간 피해자가 잘못한 거고 운이 없었다고 진술했으며 여자에 관심이 있냐는 질문에는 전혀 없다고 대답했다.

정신감정결과 범인에게는 완전한 책임능력이 있으나 성인의 반사회성 퍼스널리티 장애에 상당하는 행위장애가 있어 감정의의 의견으로는 행위장애의 원인을 제거하고 범인의 성격을 교정하고 갱생을 위해 장기간 의료적 처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지만 사건 전에 진단된 ADHD에 관한 언급은 심판이나 정신감정에서는 없었다.

이후 범인의 처우

97년 10월 13일 – 고베 가정재판소는 범인을 의료소년원 송치가 상당하다고 판단하여 간토의료소년원으로 옮겨진다.

99년 – 제 2사건으로 사망한 여아의 유족과 범인측에서 8000만엔의 금액을 지불하는 것으로 합의가 성립

2001년 11월 27일 – 치료가 순조롭다는 판단에 도호쿠 소년원으로 옮겨짐

2002년 7월 – 고베 가정재판소는 치료가 순조로운데 면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겨 수용이 더 필요하다고 결정

2004년 3월 10일 – 성인이 된 범인은 소년원을 가퇴원하고 이 사실은 법무부를 통해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전달되었다.

2005년 1월 1일 – 범인의 본퇴원이 인가된다.

2005년 5월 24일 – 피해자 소년의 8주기에 범인이 변호사를 통해 유족에게 헌화를 제의했으나 유족은 이를 거절

2007년 3월 – 2번째 사건으로 사망한 여자아이에게 의료소년원을 퇴원한 범인이 처음으로 사과의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유족들은 필사적으로 살려는 모습이 안 보인다면서 배상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소년원에서는 범인에 대해 정신감정에 가정에서의 친밀 체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 남성 주치의를 아버지역, 여성 부주치의를 어머니역할로 배치하는 유사 가족이라는 전례없는 치료체제를 갖췄는데 어느정도 효과는 있어보였다.

그렇지만 입원 1년이 지났을 무렵 소년원 공작 수업에서 신문 광고지를 오려 도화지에 붙혀 콜라주를 제작할 때 범인은 아이의 사진을 눈, 귀, 손발등을 하나하나 가위로 잘라 도화지에 붙혔는데 이게 토막난 시체마냥 보이는 작품으로 만들었고 작품의 이름은 정신과 육체의 융합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여성정신과 의사에 대해서 소년원 죄수중 한명이 요염한 흰 돼지라고 말하자 격앙된 범인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볼펜을 들어 그 발언을 한 죄수의 눈을 찌르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범인 본인의 입으로 다른 죄수에게 “아무리 유족의 수기를 읽어도,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아 나느 이상하니까…”, “투쟁과 파괴야 말로 진정한 세계의 모습이지만 소년원에서 좋은 아이인 척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으니까 조심하고있어…”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한다.

2001년 11월 도호쿠 소년원으로 이송됐을 때는 이지메를 당한데다가 죄수중 한명이 우연히 교관이 가지고 있던 서류를 훔쳐보고는 “너 설마 그 사카키바라 세이토냐?”라고 물었을 때 범인은 히죽거리며 고개를 끄덕여 이 소문이 소년원에 퍼지게 된다.

2002년 초여름에는 뜬금없이 반나체 상태로 의미불명의 괴성을 지르고 볼펜을 휘두르며 주변을 위협했다.

교관들이 달려와 다른 죄수를 데리고 갔고 소년을 둘러싸며 설득했는데 소년은 커터칼로 자신의 성기를 내리쳤다.

곧바로 연금되었고 조사를 받았지만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동요가 심한데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기행으로 단정하였다.

고베 가정재판소는 소년의 범죄적 경향이 아직도 바로잡히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리고 2004년 말까지 소년원에 계속 있을 것을 결정했다.

그렇지만 관동의료소년원은 2003년 3월에 범인의 가퇴원을 신청한 바가 있다.

이에 피해자측은 고베 가정재판소의 판단으로부터 반년 남짓한 짧은 시간에 갑자기 소년이 변했다는 건가라는 비판과 의문의 목소리를 제기했다.

이후 정보는 2004년에 법조 관계자가 설명하기를 이름을 바꾸고, 출생지, 학력등 가짜 프로필을 준비하여 현재로서 그를 아는 이가 없으며 매일 5층까지 계단에서 달리기를 15번 왕복하거나 팔굽혀펴기, 윗몸 일으키기 100회등을 하여 심신이 강인해졌고 키 170cm, 몸무게 70kg가 되었으며 범죄자 예방 갱생법 때문에 1주일 이상의 여행에는 허가를 받는 등의 제약이 있으나 술을 마시는 것이 가능하고 좋아하는 비디오 게임도 하는등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생활이 보장되어있다. 라는 말과 함께 거주지 및 근무처에 대한 질문에는 그의 갱생에는 세상의 따뜻한 이해와 협력이 중요하고 공표는 위험하다며 노코멘트를 하였다.

언론이나 시민단체에는 의도적으로 가짜정보를 흘리는 경우도 있어 이것 때문에 사카키바라가 도쿄에 살고있다던가 사이타마현에 사는 신원 보증인에게 입양되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시태어났다등의 가짜 뉴스가 보도되기도 하였다.

2015년 32세가 된 범인은 수기 “절가 고베연속아동살상사건”이라는 책을 내놓는다.

초판 10만부가 팔렸고 명의는 범인의 이전 이름으로 개제되어 있으며 현재의 본명은 적혀있지 않았다.

피해자의 유족들은 출판 중지 및 회수를 요구했지만 6월 28일에 발행되었고 7월 10일자에 제2쇄, 21일자에 3쇄가 증쇄되었다.

2015년 8월 29일 범인 본인으로부터 종요한 소식이라며 홈페이지 개설 공지가 기록된 편지가 주간문춘 앞으로 보내졌고 이는 9월 10일에 보도되었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존재의 견딜 수 없는 투명함”이라는 제목으로 메인 페이지에 프로필과 자신의 책 절가의 홍보문이 개제되어있다.

홈페이지 공지의 말미에 쓰인 범인의 편지는 A4 용지 20장, 2만자 이상에 달했고 그 내용은 절가의 출판 경위를 둘러싼 자기 자신의 사소한 명예회복을 중심으로 한 자기주장이나 당초부터 출판을 도와준 출판사에 대한 비판이나 원한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피해자 유족에 대한 사과와 사건에 대한 자기반성은 1도 쓰여있지 않았다.

홈페이지는 범인의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나 연민이 결여되어 있다거나 그의 이상함이나 위험성이 변한 것이 없다는 것, 자신을 진정한 이단으로서 생각하고 특별시하는 자기 현시욕의 장소로 쓰이고 있다며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 홈페이지는 2016년 10월에 폐쇄되었다.

피해자 유족측은 2015년 11월 14일에 교토 산업대학 강연에서 또 하나의 정신적 고통이며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라며 범인의 행동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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